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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페니아(근감소증)란 무엇인가?
최석재 칼럼
Sep 29, 2025
Ken
9
분
노화가 아닌 질병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
"나이 들어서 근육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요?"
응급실에 낙상으로 실려온 할머니 보호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CT 촬영 결과 환자의 대퇴, 기립근 근육량이 현저히 줄어있었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넘어져 대퇴골 골절이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노화'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근육이 줄어듭니다. 30세 이후부터는 매 10년마다 약 3~8%씩 감소하고, 60세가 넘으면 근육량은 연간 1%, 근력은 연간 2.5~3%씩 감소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근육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근력과 신체 기능까지 함께 떨어지는 상태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를 사르코페니아(Sarcopenia, 근감소증)라고 합니다.
사르코페니아의 정의: 단순한 근육 감소가 아니다
사르코페니아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살(sarx)'과 '감소(penia)'를 합친 말로, 1989년 Irwin Rosenberg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의는 단순한 근육량 감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유럽 사르코페니아 워킹그룹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력 저하 (Primary parameter): 악력 측정, 의자에서 일어나기 테스트
근육량 감소 (Confirmatory parameter): DXA, BIA, CT/MRI를 통한 측정
신체 수행능력 저하 (Severe sarcopenia indicator): 보행 속도, 균형 유지 능력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끼는 점은, 같은 나이라도 근력과 일상 생활 가능 여부가 환자별로 많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90세인데도 스스로 걸어서 병원에 오시는 분이 있는 반면, 70대인데도 가족의 부축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사르코페니아의 유무에서 비롯됩니다.

전 세계적 유병률: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
최근 전 세계 692,056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메타분석에 따르면, 사르코페니아의 유병률은 진단 기준에 따라 10-27%로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 노인의 10-16%가 사르코페니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국내 노인에서 사르코페니아 유병률은 대체로 10% 안팎으로 보고되지만, 잠재 고위험군은 20–30%까지 포착됩니다. 이는 동아시아인의 특성상 서구인보다 근육량이 적고, BMI가 정상이어도 근감소증이 있는 '숨은 사르코페니아' 환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든 노인 환자들에서 사르코페니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2020년 이전에는 스스로 걸으며 운동을 하던 노인 환자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에만 있다가 2년 만에 걷기도 어려워져서 완전히 누워 지내는 상태로 응급실에 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르코페니아의 분류: 원인에 따른 구분
사르코페니아는 원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원발성(일차성) 사르코페니아
노화 자체가 주요 원인
다른 명확한 원인 질환이 없는 경우
65세 이상에서 가장 흔함
속발성(이차성) 사르코페니아
특정 질환이나 상황에 의해 발생
활동 부족: 병원 입원으로 길어진 침상 생활
질병: 암, 심부전, 만성 신부전, 염증성 질환, 내분비 질환
영양 부족: 단백질 섭취 부족, 흡수장애, 식욕부진
응급실에서 보는 사르코페니아 환자들 중 상당수는 속발성입니다. 특히 암 환자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에서 근육량 감소가 급격히 진행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르코페니아가 중요한 이유: 전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단순한 근육 감소가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낙상과 골절 위험 증가
근력이 약해지면 균형감각이 떨어지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근육이 뼈를 보호하는 역할이 줄어들어 같은 높이에서 넘어져도 골절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관절 골절은 1년 내 사망률이 20-3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대사질환 위험 증가
근육은 우리 몸의 포도당 저장고입니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져 당뇨병 위험이 크게 높아집니다. 또한 기초대사율이 감소하여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찌기 쉬워지고, 내장지방 축적으로 이어집니다.
면역력 저하와 감염 위험
근육은 면역 세포의 중요한 공급원입니다. 근육량이 부족한 환자들은 폐렴 등 감염성 질환에 더 쉽게 걸리고, 회복도 더딥니다. 코로나19 중증환자가 늘면서 이런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망률 증가
여러 메타분석에서 사르코페니아가 있는 환자의 전체 사망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네덜란드의 10년간 추적 연구에서도 사르코페니아와 근감소성 비만이 사망률과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르코페니아의 발생 기전: 복잡한 메커니즘
사르코페니아는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복잡한 기전이 얽혀있습니다.
호르몬 변화
성장호르몬, 인슐린양 성장인자(IGF-1) 감소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등 성호르몬 저하
갑상선 호르몬 변화
단백질 합성과 분해의 불균형
근육 단백질 합성 감소
근육 단백질 분해 증가
mTOR 신호전달 경로 이상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와 단백질 항상성 메커니즘 손상이 사르코페니아의 복잡한 병인에 중요한 기여 요소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항상성과 골격근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미토콘드리아 손상은 일련의 병리생리학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신경과 근육 섬유에 풍부한 미토콘드리아는 신경근접합부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미토콘드리아와 신경근접합부의 손상이 사르코페니아로 이어지는 핵심 병리생리 기전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만성 염증
나이와 관련된 활성산소 생성과 항산화 방어 메커니즘의 불균형은 사르코페니아에서 인간 골격근의 만성 염증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는 활성산소종(ROS) 생성 증가로 이어져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근육 단백질 대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신경계 변화
운동신경원 수 감소
신경근접합부 기능 저하
중추신경계 조절 능력 감소
치료와 관리: 젊어서부터 미리미리
다행히 사르코페니아는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환입니다. 2024년 랜셋 헬시 롱제비티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신체활동과 중강도-고강도 신체활동이 사르코페니아와 역의 관계를 보였습니다. 이는 가벼운 강도보다는 중강도-고강도 신체활동 기반 중재가 사르코페니아 예방에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운동 치료
저항 운동: 주 2-3회, 대근육군 중심
유산소 운동: 주 150분 이상 중강도 또는 75분 고강도
균형과 유연성 운동: 낙상 예방 목적
영양 관리
단백질: 체중 1kg당 1.0-1.5g
필수 아미노산, 특히 류신 보충
비타민 D: 800-1000 IU/일
약물 치료 (연구 단계)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 (남성)
성장호르몬 관련 치료
미오스타틴 억제제
ACE 억제제의 보조적 효과

예방의 중요성: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사르코페니아 관리의 핵심은 예방입니다. 40대부터 시작되는 근육량 감소를 늦추고, 근력과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생활 습관 개선
규칙적인 운동 습관 형성
충분한 단백질 섭취
적절한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
정기적인 평가
65세 이상: 연 1회 근력과 기능 평가
고위험군: 더 자주 모니터링
체성분 분석을 통한 객관적 평가
조기 개입
전 사르코페니아 단계에서의 적극적 관리
다학제적 접근 (의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개인 맞춤형 운동 처방
미래 전망: AI와 정밀의학
최근에는 CT나 MRI 영상에서 근육량과 근육 내 지방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AI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특히 복부 CT에서 추출한 L3(제 3요추) 레벨 영상에서 근육량과 지방량을 분석해 사르코페니아를 선별하는 기술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정밀한 평가가 가능해지고 있으며, 개인별 맞춤 치료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혈액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조기 진단법, 유전자 검사를 통한 개인별 위험도 평가, 새로운 약물 개발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사르코페니아 치료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근육은 '노인의 보험'
결국 사르코페니아는 단순히 근육이 줄어드는 노화 현상이 아니라, 낙상, 골절, 대사질환, 사망 위험까지 높이는 중요한 질환입니다. 근육은 '노인의 보험'이라 불릴 만큼 건강한 노화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자산입니다.
응급실에서 많은 환자를 만나며 느낀 것은, 건강한 노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양질의 단백질 섭취, 그리고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해 사르코페니아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근감소성 비만: 근육은 줄고 살은 찌는 최악의 조합"을 다루며, 현대인에게 급증하고 있는 이 새로운 건강 위협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